DARK SERAPHIM

ΟΠΟΙΟΣ ΜΠΑΙΝΕΙ ΕΔΩ ΝΑ ΠΑΡΑΤΑ ΚΑΘΕ ΕΛΠΙΔΑ

Travel/KOREA

2016.01.10 창덕궁 후원

다크세라핌 2018. 3. 19. 01:56

동생들이 홍콩으로 여행을 간 김에..
부모님을 모시고 창덕궁 후원을 예약해서 다녀왔다.

거의 늘 예약이 차있다보니, 기회가 닿지 않았는데,
연초내내 춥다가 하루 날이 풀려서인지 마침 자리가 있었다.
아부지 직장에 차를 대고 창덕궁 정문으로 돌담길을 걸어갔다.
아침엔 날이 좀 추웠지만, 다행히 후원을 걸을때는 괜찮았다.


돈화문 (보물 834호)


창덕궁의 정문 돈화문을 지나면, 주 궁궐들은 우측으로 배치되어있다.
나중에 포스팅할 경복궁이 유교적 이상정치를 추구한 
정도전에 의해 지어지다 보니 정문인 광화문으로부터 
모든 문을 개방하면 임금의 침소까지 일직선으로 볼 수 있는
철저하게 공개되는 구조인 반면에
창덕궁은 정문을 지나 우측으로 진선문을 지나야 정전을 볼 수 있고,
숙정문까지 지나야 임금의 침소를 볼 수 있는
다소 폐쇄적인 구조로 되어있다.
아무래도 정도전을 쳐낸 태종임금의 주도하에 지어진 궁궐이기 때문이리라


돈화문을 들어가면 정면 궐내각사의 앞쪽으로
조선의 4대궁궐 중 유일하게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표석이 있다.

지금까지 창덕궁만 정상적인 상태로 보존이 되어있어서
창덕궁만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던 걸로 알고 있었는데,
후원에서 문화유산 해설사님에게 들은바로는,
그 당시에는 묶어서 신청하는게 알려지지 않아서
비슷한 형태의 유산을 재지정하기가 어렵다보니
창덕궁만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고 한다

실제로 역사유적지구, 혹은 비슷한 성격의 유적을 모아서 지정한게
일본의 교토부터였던걸 감안하면,
저 당시의 상황은 아쉽지만 어쩔수 없는 부분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들어왔으니 일단 주 해설판넬은 찍어주고,
후원은 해설사에 의한 단체관람만 가능하니, 
시간상 후원을 먼저 보러가기로 했다.


후원의 입구는 이렇게 평상시에는 막혀있고,
30분마다 출발하는 해설사와 함께만 입장이 가능하다.

사철 모두 특유의 아름다운 경치를 볼 수 있는 곳인데,
겨울엔 눈이 와야 더 아름답다고 하는데,
눈까진 어쩔수 없는 부분이었다.


창덕궁 후원의 설명판넬도 한컷 남기고...
들어가는 길목의 돌담길은 정방형의 조선의 전통적인 담벼락과
창경궁과의 구획구분을 위해 일제시대에 만들어진
왜식의 마름모꼴 담벼락으로 좌, 우측이 각각 다른 디자인이었다.


길목에 있는 제설도구함이 초가집형태로 만들어진것도 특이했다.


5분남짓을 걸어가면 처음으로 눈에 들어오는 곳은 
부용지와 주합루 일원이었다.
정면으로 보이는 2층의 건물이 주합루로 
본래 1층에 규장각이, 2층이 열람실인 주합루였지만, 
지금은 모두를 주합루로 부르고 있다.
주합루의 정문이 수어문으로 유비와 제갈량의 수어지교의 일화를 차용한
임금이 어진 인재를 등용하는 문이면서
부용지에서 인재가 승천하는 문이기도 한 것이다.


부용정(보물 1763호)


주합루는 부용정을 내려보고 있었다.
정조대왕은 이곳에서 공부중인 학자들에게 직접 시제를 내렸고
시제에 대답하지 못하는 학자들은 가운데의 섬에 유배를 보냈다고 하니
학자들은 어떻게든 학문을 정진하려 노력할 수 밖에 없었을것이다.


최근에 발견된 주합루 앞쪽의 우물도 한컷

부용지와 주합루 일원을 지나면 애련지와 의두합일원으로 가게된다


저 멀리 보이는 금마문...
이 옆에는 경복궁역에 모조품이 있는 불로문이 있는데
깜빡하고 사진을 안찍고 돌아왔다.
그 문을 지나는 임금과 왕실가족의 무병장수를 기원했으리라


왕실의 건물답지 않게 북향인 이 건물은
효명세자(익종)의 독서처였던 의두합이다.
궐내의 건물치고 단청이 되어있지 않은 수수한 건물로,
뒤로 보이는 담 너머가 규장각이었던걸 감안하면,
독서를 하며 때때로 스승을 청하기 가장 좋은 건물로 보인다.
세종대왕과 같은 임금이 되려 했던 효명세자는 단명하여
결국 임금이 되지 못하고 그 아들 헌종이 익종으로 추존하게 된다.


의두합 맞은편에는 애련지가 있고, 그곳에 절반정도는 물에 발을 담근
당장봐도 시원해 보이는 애련정이 있었다.

이곳의 다음은 존덕정 등 3개의 정자가 있는 곳이었다.


좌측부터 숭재정 폄우사 존덕정 관람정이라 불린다


존덕정으로 넘어가는 다리를 건너서,

존덕정 내부엔 청룡과 황룡이 그려진 단청이 있었고,


관람정은 특이하게도 부채꼴형태로 만들어진 정자였다.

이곳에서 옥류천으로 가는 길은 지금까지 온길과는 달리
오르막길로 되어 있어서 힘들지 모르지 가지 못할것 같으면 
돌아가는 길로 나가도 된다고 했지만
돌아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본래 물이 흘렀어야 되는 이곳의 옆쪽으로
성균관대학교가 생기면서 이쪽으로 흐르는 물이 많이 줄었다고 한다.
이곳은 임금이 흐르는 물 옆에서 피서를 즐겼다고 하던 소요정이었다.


조금더 안쪽으로 있는 정사각형태의 태극정과
그 안쪽의 특이한 단청
이곳을 설명할 때, 존덕정의 쌍룡단청과 함께 
꼭 챙겨서 봐야하는 단청이라고 한다.


궐내의 유일한 초가지붕정자 청의정,
본래 이곳에서 농사를 짓지는 않았다고 하는데
창경궁의 농지가 없어지면서 임금의 농사터를 이곳으로 옮겼다고 한다.
그 농사터에서 나온 짚으로 이곳의 지붕을 잇는다고 한다.


바위에 새겨진 옥류천이라는 이름은 잘 보이지 않지만,
물이 흐르는 길을 잘 깎아서 정자에 앉아서 물소리를 들으면 
참 낭만적인 곳일것 같았다.
다만, 임금의 격무속에서 이곳에 쉬러올 기회는 
많지 않았으리라 생각된다.


옥류천에서 나오는 길목에 의두합의 좌측으로 있는 연경당

이곳은 궁이면서도 양반 사대부의 집과 같은 형태로 지어져 있었다.

음... 어쩌면 로얄패밀리의 서민(?)체험과 같은 느낌이 아니었을까
물론 99칸 사대부의 집이 아닌 120칸에 이르는 큰 집이기에
누가봐도 사대부의 집이라기 보다는 궁가가 맞지만,
단청이 전혀 없는 것 때문인지 궐의 화려함에 비교되어서인지
많이 수수한 것처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