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SERAPHIM

ΟΠΟΙΟΣ ΜΠΑΙΝΕΙ ΕΔΩ ΝΑ ΠΑΡΑΤΑ ΚΑΘΕ ΕΛΠΙΔΑ

Collectomaniac 41

2011.04.23 - 최계훈

11년 초반 엘지가 선두싸움을 하던 가운데 덕장 투수코치 최계훈 코치가 있었다.주키치 박현준 리즈 김광삼의 4선발이 확실했고 김선규, 이동현, 이상열의 중간계투까지도 탄탄했다. 문제의 마무리는 불안하긴 해도 신인 임찬규가 있었고, 6월까지의 투수진은 분명 탄탄했다... 하지만 우승을 위해 박병호를 주고 데려온 송신영이 추가되고도 투수진은 점점 무너지기 시작했고.. 최계훈 코치도 같이 사라져버렸다.. 분명 최계훈 매직이라 불리는 투수 관리가 있었지만.. 조급증과 부담을 이겨내진 못한거같다.

2011.04.23 - 박용택

02년 엘지의 마지막 한국시리즈당시 신인이었던 박용택.. 09년 자신의 커리어하이를 찍으면서 이제 매년 3할은 기본으로 치는 베테랑이 되었다. 보통 경기를 진 날은 다들 그냥 가곤하는데 이날따라 박용택이 쪽문으로 나와서 줄서있는 사람들 대부분 싸인을 해주고 갔다.솔비아부지 박용택은 보통 아이들한테는 잘 해주는데 애들사이에 꼽사리껴서 받은 볼이다. 그리고 이때부터 난 공인구에 싸인을 받기 시작했다. 학교선배이기도 하고 워낙 좋아하는 선수다보니 이 이후로도 콜렉션이 주욱 계속된다

2011.04.23 - 이동현

이렇다할 변변한 선발하나 없던...02년..(만자니오 미안..)엘지가 4강에 성공적으로 안착하게한 1등공신은 장문석 이동현 이승호 이상훈 4명의 불펜들이었다. 특유의 포크볼하나로 불펜에서만 2002년 124이닝, 2003년 95이닝을 소화해낸 그는 2004년 셋업으로 53이닝을 소화한 후 혹사의 후유증으로 팔꿈치 수술을 받는다. 그것도 2004년 2005년 두번연속.. 그리고 재활훈련중 2007년에 다시한번.. 수술후 장기간의 공백기를 걸쳐 2009년에 복귀.. 2010년 74이닝을 던지며 불펜을 이끌다가 2011년 당시에는 컨디션 난조를 보이고 있었고, 싸인볼 받던날엔 이동현의 난조로 패전이 되었다. 싸인해주면서 팬들에게 야구 못해서 미안하다는 그에게난 다시 던져주는 것만도 고맙다고 했고.. 엘지에 마..

2011.04.23 - 박현준

리즈-주키치-봉중근 트리오의 10승을 당연히 구상했던 엘지에게시즌초 봉중근의 부상은 11년 타력의 절정의 오른 엘지에게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이었다. 하지만 이 난국에 혜성같이 등장한 토종 10승투수 박현준. 사이드암 투수로 포크볼을 들고와서 신연봉제하의 엘지에서 2012년 이후로는 탄탄대로가 보장되었다. 싸인볼 획득당시만해도 뉴에이스로 떠오른 덕에 팬들이 점점 많아지는 추세였는데.. 박종훈감독의 전반기 막판 계투알바로 인해 하반기에는 전반기만 못한 성적을 내었다. 그리고 2012년 겨울.... 사상초유의 승부조작사건으로 영구제명되었다... 팀내에서 더 썩어들어가기 전에 조작의 뿌리를 뽑아낸 점과.. 임창용 이후로는 보기 힘들었던 사이드암 선발투수의 가능성을 보였다는 점에서는... 어느정도 좋은 영향을 ..

2010.11.23 - 양준혁

학교에 양준혁이 강연을 온다고 해서 후배들과 야구공을 하나씩 들고 과도관에 집결한창 '1루까지 항상 전력질주를 했다'라는 강연으로 주가를 올리고 있었기에고대내 야구팬들은 거의 다 모여있었다 시작이 조금 늦어진 차에 도착했다는 얘길듣고 나가봤지만 아무도 없었고아무 생각없이 화장실을 들르다가 문앞에서 거구의 남자와 마주쳤고 습관적으로 공을 내밀어서 싸인을 받았다강연이 끝나고 바로 가버리는 바람에 주최측이 이벤트로 제공한 2개의 사인볼을 제외하면유일하게 직접 싸인을 받은 승리자가 되었다 선수협 파동으로 해태와 엘지를 거쳐서02년에 FA로 삼성으로 돌아간 영원한 삼성맨이지만그래도 01년도 타격왕을 기록한 좋은 선수였고누적으로 그 누구도 깰수 없는 엄청난 기록을 남긴 레전드인 점은 그 누구도 이론의 여지가 없을 ..

2010.05.09 - 박경수

2003년.. 역대 누구보다도 많은 기대를 받으며 입단한 1차지명 초대형신인 박경수.2004년 그럭저럭한 성적을 올리며 김재박-유지현으로 이어지는 엘지의 유격수 라인을 무난히 꿰찰거라 생각했는데... 그의 전성기는 고등학교시절이 되어버렸다.늘 2할 5푼정도 쳐주면서 가끔 뜬금포라도 나와주는 수비요정..수비와 야구센스만은 지금도 KBO 상위권에 드는 선수라고 보지만, 아쉽게도 그의 타격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2007~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 북경수로 떠오를 정도로 반짝 했던걸 마지막으로...심지어 박종훈 감독 체계에선 유격-2루를 모두 뛰게해버리니 그나마 주특기인 수비마저도 무너져서 오지환과 박경수 구멍 키스톤콤비가 탄생하기도... 현재 공익근무중.... 제발 약속의 서른이니 터져주라... 그래..

2010.05.09 - 신정락

고연전 승리, 2009 드래프트 1픽의 주역..2008년 꼴찌로 얻어낸 전체드래프트 1픽에서...예년에 비해서 좋은 선수가 없다는 혹평속에도 고대 에이스 신정락이 뽑혔고.데뷔전에서 엄청난 슬라이더를 보여줬고,엘지의 불펜으로 한참 자리를 잡고 있던 그 즈음에 쪽문으로 몰래 나가는 신정락은 아무도 못알아보고..신인이라고 그나마 알아보는 사람들의 사진촬영 사인요구로 근 30분에 가까운 요청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다 받아줌 참 볼때마다 기대가 큰 선수다.

2010.04.29 - 오상민

'껌옹'이라는 별명으로 익숙한 쏠쏠한 좌완불펜의 대명사였던 오상민.2010년 직관하고 돌아오는 길에 받음. 선수로서는 매력적이었으나, 사생활측면에서는 여러모로 문제가 많았고 결국은 그의 방출과 함께 류택현, 이상열, 오상민 좌완 3인방이 돌아가며 막아주던 엘지 좌완불펜의 과부하로 가장 기적적이었던 DTD가 시작됨.단 한명의 선수 잘못이라기 보다는 팀 케미가 깨져버린게 가장 큰 문제가 아니었을까..하지만 어쨋건 2000년대 최고의 좌완불펜중 하나였음엔 이견의 여지가 없다고 본다.

2009.12.09 - 정삼흠

임수혁선배님 돕기행사에서 얻은 또하나의 싸인볼. 그날 많은 선수들을 봤었다. 손민한, 김용의, 조경환, 등등.... 그러나 가진 공이 몇개 안되는 관계로. 또한분의 94년 우승멤버, 엘지 레전드 정삼흠 선배님 싸인볼 획득.. 그다지 큰 체구가 아님에도 10승은 기본으로 해주던 90년대 초반.. 그때의 엘지는 두명의 선발만으로도 25승은 먹고가던 시절이었는데..

인생 첫 싸인볼 - 박종호

언제였는지 기억도 안나는 어릴적에.. 아마 94년이겠지 우승기념구니까 엄마가 구해다준 싸인볼 이거 찾아보니 2개나 있었다. 이 공과 그때 유행하던 야구 카드가 나오는 사탕에서 나온 이상훈카드땜에 난 엘지팬이 되었던걸로 기억한다. 94 우승기념구에 박종호 싸인. 프린팅이지만, 00년에 현대에서 박종호가 터질때까지도 난 박종호가 누군지 잘 몰랐다. 말년에 엘지로 복귀해서 은퇴. 결국 커리어하이는 현대에서 다 기록해버렸다는거여튼 나름 94년 우승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