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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26 01:38

2013.11.06 해외문화체험 - 서호 Travel/CHINA2018.03.26 01:38

항저우 첫 여정지는 바로 서호. 


항저우의 서쪽이면서 서시의 미모에 비할수 있다하여 서호라 이름붙여진 이 호수는 

반자연, 반인공으로 만들어진 호수로, 

호수에 지속적으로 둑을 쌓아서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서호의 소제를 쌓은 소동파.. 소식. 

지금은 그의 시부보다도 동파육으로 더 익숙하게 다가온다.


서호의 쪽배로 뱃놀이를 즐기는데, 반환점의 뒤에는 악왕묘가 있고, 

발점에서는 뇌봉탑이 보였다. 허나, 그 둘다 들러보지 못하는 아쉬움이 컸다.
아마도 그 모두를 좋아하지 않을법한 다른사람들은 아쉽지 않았으리라..

어떻게 송나라 땅에 와서 만고의 충신, 

충으로는 제갈무후와 비견되며, 무로는 관공과함께 무묘에 배향된 

무목 악비를 보지 않고 갈수 있을지.. 아쉬움은 끝이 없었다.


돌아오는 뱃길에는 뇌봉탑에 불이 켜졌다. 

본래 서호의 전설은 백사 백소정과 서생 허선과 금산사의 주지 법해의 이야기이며, 

뇌봉탑에 봉인된 백소정을 청사가 구해낸다는 이야기인데.. 

그 뇌봉탑은 여전히 여기 서있다. 

악왕묘는 볼수 없었지만 뇌봉탑이라도 멀리서나마 지켜보고 가는걸로 

아쉬움을 조금이나마 달래며 시간이 늦어 어둑어둑해지는데 

바로 옆에 있는 화항관어로 향했다.


화항관어, 꽃 항구에서 물고기를 본다. 

많은 중국 사극에서 볼수 있었던 아름답기로 유명한 정원.. 

그러나 시간이 너무나 늦은 탓에 그 아름다움을 볼수가 없었다. 

어둠속에서 윤곽만을 보아도 아름다운 비경들이 간간히 보일정도였다. 

이곳은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악왕묘와 함께 다시한번 꼭 와봐야겠다.


화항관어를 잽싸게 스쳐간후 저녁은 조선족이 운영한다는 삼겹살 파티..


불과 40분의 짧은 시간만이 주어졌지만, 동기들과 함께 빠른 흡입으로... 

3회리필에... 칭다오는 수병이 비워졌다.. 
이번 여행 내내 우리 동기들은 끝없는 먹방을 찍게 된다.

(민망해서 사진은 굳이 많이 올리지 않겠다)

식사후 다음코스 송성가무쇼를 보러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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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중국 | 항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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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JP 다크세라핌
2018.03.19 01:56

2016.01.10 창덕궁 후원 Travel/KOREA2018.03.19 01:56

동생들이 홍콩으로 여행을 간 김에..
부모님을 모시고 창덕궁 후원을 예약해서 다녀왔다.

거의 늘 예약이 차있다보니, 기회가 닿지 않았는데,
연초내내 춥다가 하루 날이 풀려서인지 마침 자리가 있었다.
아부지 직장에 차를 대고 창덕궁 정문으로 돌담길을 걸어갔다.
아침엔 날이 좀 추웠지만, 다행히 후원을 걸을때는 괜찮았다.


돈화문 (보물 834호)


창덕궁의 정문 돈화문을 지나면, 주 궁궐들은 우측으로 배치되어있다.
나중에 포스팅할 경복궁이 유교적 이상정치를 추구한 
정도전에 의해 지어지다 보니 정문인 광화문으로부터 
모든 문을 개방하면 임금의 침소까지 일직선으로 볼 수 있는
철저하게 공개되는 구조인 반면에
창덕궁은 정문을 지나 우측으로 진선문을 지나야 정전을 볼 수 있고,
숙정문까지 지나야 임금의 침소를 볼 수 있는
다소 폐쇄적인 구조로 되어있다.
아무래도 정도전을 쳐낸 태종임금의 주도하에 지어진 궁궐이기 때문이리라


돈화문을 들어가면 정면 궐내각사의 앞쪽으로
조선의 4대궁궐 중 유일하게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표석이 있다.

지금까지 창덕궁만 정상적인 상태로 보존이 되어있어서
창덕궁만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던 걸로 알고 있었는데,
후원에서 문화유산 해설사님에게 들은바로는,
그 당시에는 묶어서 신청하는게 알려지지 않아서
비슷한 형태의 유산을 재지정하기가 어렵다보니
창덕궁만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고 한다

실제로 역사유적지구, 혹은 비슷한 성격의 유적을 모아서 지정한게
일본의 교토부터였던걸 감안하면,
저 당시의 상황은 아쉽지만 어쩔수 없는 부분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들어왔으니 일단 주 해설판넬은 찍어주고,
후원은 해설사에 의한 단체관람만 가능하니, 
시간상 후원을 먼저 보러가기로 했다.


후원의 입구는 이렇게 평상시에는 막혀있고,
30분마다 출발하는 해설사와 함께만 입장이 가능하다.

사철 모두 특유의 아름다운 경치를 볼 수 있는 곳인데,
겨울엔 눈이 와야 더 아름답다고 하는데,
눈까진 어쩔수 없는 부분이었다.


창덕궁 후원의 설명판넬도 한컷 남기고...
들어가는 길목의 돌담길은 정방형의 조선의 전통적인 담벼락과
창경궁과의 구획구분을 위해 일제시대에 만들어진
왜식의 마름모꼴 담벼락으로 좌, 우측이 각각 다른 디자인이었다.


길목에 있는 제설도구함이 초가집형태로 만들어진것도 특이했다.


5분남짓을 걸어가면 처음으로 눈에 들어오는 곳은 
부용지와 주합루 일원이었다.
정면으로 보이는 2층의 건물이 주합루로 
본래 1층에 규장각이, 2층이 열람실인 주합루였지만, 
지금은 모두를 주합루로 부르고 있다.
주합루의 정문이 수어문으로 유비와 제갈량의 수어지교의 일화를 차용한
임금이 어진 인재를 등용하는 문이면서
부용지에서 인재가 승천하는 문이기도 한 것이다.


부용정(보물 1763호)


주합루는 부용정을 내려보고 있었다.
정조대왕은 이곳에서 공부중인 학자들에게 직접 시제를 내렸고
시제에 대답하지 못하는 학자들은 가운데의 섬에 유배를 보냈다고 하니
학자들은 어떻게든 학문을 정진하려 노력할 수 밖에 없었을것이다.


최근에 발견된 주합루 앞쪽의 우물도 한컷

부용지와 주합루 일원을 지나면 애련지와 의두합일원으로 가게된다


저 멀리 보이는 금마문...
이 옆에는 경복궁역에 모조품이 있는 불로문이 있는데
깜빡하고 사진을 안찍고 돌아왔다.
그 문을 지나는 임금과 왕실가족의 무병장수를 기원했으리라


왕실의 건물답지 않게 북향인 이 건물은
효명세자(익종)의 독서처였던 의두합이다.
궐내의 건물치고 단청이 되어있지 않은 수수한 건물로,
뒤로 보이는 담 너머가 규장각이었던걸 감안하면,
독서를 하며 때때로 스승을 청하기 가장 좋은 건물로 보인다.
세종대왕과 같은 임금이 되려 했던 효명세자는 단명하여
결국 임금이 되지 못하고 그 아들 헌종이 익종으로 추존하게 된다.


의두합 맞은편에는 애련지가 있고, 그곳에 절반정도는 물에 발을 담근
당장봐도 시원해 보이는 애련정이 있었다.

이곳의 다음은 존덕정 등 3개의 정자가 있는 곳이었다.


좌측부터 숭재정 폄우사 존덕정 관람정이라 불린다


존덕정으로 넘어가는 다리를 건너서,

존덕정 내부엔 청룡과 황룡이 그려진 단청이 있었고,


관람정은 특이하게도 부채꼴형태로 만들어진 정자였다.

이곳에서 옥류천으로 가는 길은 지금까지 온길과는 달리
오르막길로 되어 있어서 힘들지 모르지 가지 못할것 같으면 
돌아가는 길로 나가도 된다고 했지만
돌아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본래 물이 흘렀어야 되는 이곳의 옆쪽으로
성균관대학교가 생기면서 이쪽으로 흐르는 물이 많이 줄었다고 한다.
이곳은 임금이 흐르는 물 옆에서 피서를 즐겼다고 하던 소요정이었다.


조금더 안쪽으로 있는 정사각형태의 태극정과
그 안쪽의 특이한 단청
이곳을 설명할 때, 존덕정의 쌍룡단청과 함께 
꼭 챙겨서 봐야하는 단청이라고 한다.


궐내의 유일한 초가지붕정자 청의정,
본래 이곳에서 농사를 짓지는 않았다고 하는데
창경궁의 농지가 없어지면서 임금의 농사터를 이곳으로 옮겼다고 한다.
그 농사터에서 나온 짚으로 이곳의 지붕을 잇는다고 한다.


바위에 새겨진 옥류천이라는 이름은 잘 보이지 않지만,
물이 흐르는 길을 잘 깎아서 정자에 앉아서 물소리를 들으면 
참 낭만적인 곳일것 같았다.
다만, 임금의 격무속에서 이곳에 쉬러올 기회는 
많지 않았으리라 생각된다.


옥류천에서 나오는 길목에 의두합의 좌측으로 있는 연경당

이곳은 궁이면서도 양반 사대부의 집과 같은 형태로 지어져 있었다.

음... 어쩌면 로얄패밀리의 서민(?)체험과 같은 느낌이 아니었을까
물론 99칸 사대부의 집이 아닌 120칸에 이르는 큰 집이기에
누가봐도 사대부의 집이라기 보다는 궁가가 맞지만,
단청이 전혀 없는 것 때문인지 궐의 화려함에 비교되어서인지
많이 수수한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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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와룡동 2-71 | 창덕궁 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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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JP 다크세라핌

마사지를 받고 나오니 바로 옆이 호이안 고도시의 입구였다.


입장권을 판매하는 곳..

사실 좀 돌아서 들어가거나 하면 티켓을 사지 않고 들어가는 백도어도 많다고 하고,

실제로 안에서 몇몇 건물을 제외하고는 티켓을 내고 들어갈 필요도 없으며,

정말 어쩌다 한번쯤 랜덤으로 체크를 한다고 하는데,

굳이 1인당 12만동(6천원) 밖에 안하는 티켓을 가지고 그렇게 하고 싶지도 않고,

더구나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만큼,

문화유산의 지속적인 보존을 위해 티켓팅을 하고 들어갔다.

(당연한 일인건 잘 알고있음...)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문양이 새겨진 특이한 형태의 게이트.

이제 어딜가나 저 문양을 찾는게 습관이 되어버렸다.


투본강을 따라서 등불축제때 쓰는 것 같은 큰 등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아마도 밤이 되면 저 등에 불이 들어오지 않을까..


입구를 기준으로 호이안의 신시가지쪽이었다

저녁 7시에 이 골목에서부터 야시장이 시작된다고 한다.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를 이어주는 다리,

그리고 가장 많은 관광객이 지나다니는 다리로 유명하다.

호이안에 대한 소개 프로그램에서 참 자주 봤던 다리를 지나 구시가지로 들어갔다.


구시가지로 넘어와서 우물터 바로 맞은편에 있는 보석박물관

각종 보석의 원석과 가공된 보석을 전시 및 판매하고 있다.

제주도에 엄청나게 많이 생겨난 어설픈 박물관들 정도의 전시가 이루어지며,

1층은 무료로 공개되어 있으니 한번쯤 들러볼만한 곳이다.

2층은 별도로 비용을 지불해야 갈 수 있는데, 좀 더 고가의 전시물들과

와인바로 이용되고 있다고 해서 굳이 가지 않았다.

(내부에서 촬영이 안되어서 그냥 쭉 보고 나왔다)


사실 토론토에서 ROM의 광물관을 보지 않았으면 꽤나 매력적일 수 있을만한 곳인데,

거길 보고오니 어지간한 수준의 보석관은 눈에 차지 않았다.


건물들이 거의 다 목조로 되어있는게 이채로왔다.

간판들도 고도시의 분위기와 어울리게 만들어져 있어서,

기념품과 먹거리 위주의 가게들도 나름대로 볼만한 곳이었다.


이곳은 중국인들이 모여살던 곳인 회관인데,

호이안 고도시의 입장권에는 5장의 통합입장권이 붙어있어서,

이런 회관이나 고가(Nha Co) 등의 통합입장이 가능한 건물에 입장할 떄 사용할 수 있다.

이곳이 회관중에서 가장 화려하다고는 하는데,

보다시피 앞을 가득 메우고 있는 중국인 관광객들을 피해서 그냥 지나쳤다.


차량이나 오토바이도 지나다닐수 없는 이 곳에서 유일하게 허락된 교통수단은 자전거 뿐이다.

그래서 요 씨클로라는 교통수단은 호이안 구시가지 투어를 편하게 할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걸어다니지 못할정도로 넓은 공간은 아니다)


통합입장권을 이용해 입장할 첫 장소는 득안고가

고가(古家)라는 말 그대로 오래된 집을 그대로 보존해 둔 곳이었다.

이 집의 주인은 공산당 창당을 주도했던 사람이었다고 하는데,

그덕에 이 집에서 반 프랑스 독립운동가들이 많이 드나들었다고 한다.


집이 그렇게 큰 편은 아니기 때문에,

그냥 훑어보기만 하면 5분안에 다 둘러볼 수 있는 정도였다.


득안고가를 나와서 만난 골목길이 뭔가 분위기가 있어보여서....


그리고 그 골목길 옆집은 개방되어 있지는 않았지만,

신기한 식물들을 매달아두어서 많은 과왁액들이 그 앞에서 사진을 찍고가곤했다.


빈 시클로는 지나가는 사람마다 다 붙잡으려고 한다.

베트남 여행온 김에 한번쯤 기회가 되면 타보려고 했는데,

기사를 고용한 탓에 한번도 타볼수가 없었다.


이곳은 꽌탕고가..

또다른 고가인데 득안고가를 봤으니 여긴 생략하고 

바로 맞은편의 도자기 무역 박물관에 들어갔다.


역시나 통합입장권으로 입장이 가능하다.

좀 천천히 하나하나 봤어도 좋았겠지만,

덥기도 더울뿐더러 5시면 이 나름대로의 어트랙션(?) 전시관들이 전부 문을 닫는다.

마사지를 받고 나온 시간이 3시니 2시간안에 최대한 뽕을 뽑자라는 생각으로 쭉 둘러보게 되었다.

호이안은 15세기부터 동남아시아의 무역항으로 발전한 도시였다.

비록 지금은 다낭에 밀려서 항구도시로서의 기능을 거의 상실하였지만,

나름 동아시아 도자기 무역의 주요 거점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렇다할 유물이 많지는 않았고,

전시된 도자기들 보다 오래된 건물 자체가 더 의미가 있는 공간으로 보였다.


건물 중간에 있는 작은 테라리움..




2층으로 올라가는 좁고 가파른 계단을 따라 올라가니 

왠지 중국영화나 드라마에서 나올법한 목조건물의 분위기가 살아있었다.


2층 발코니에서 내려본 골목..


도자기 박물관에 와서는 도자기는 하나도 안찍고 건물 자체의 분위기에 빠져있다니..


그래서 예의상 이곳에서 가장 정상적인 도자기들을 한컷 찍어왔다.



별로 안 걸은것 같은데 지도로 보니 꽤나 많이 걸어왔다.

시간은 4시가 넘어서 조금 서둘러서 관람을 해야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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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JP 다크세라핌